어느덧 1년의 2/3 이상이 훌쩍 지나가고, 무더운 여름을 지나 선선한 가을 날씨를 바라보게 되는 날들입니다. 기후 위기의 영향 때문인지 여전히 기온은 높고 난데없는 소나기가 내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에게는 가을이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이 즈음은 기획자에게 있어 가장 바쁜 성수기이기도 하지요. 요즘 코로나도 다시 유행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몸과 마음의 건강을 다들 잘 돌보시길 바랍니다.
양배추의 세 번째 편지는 '추'가 가장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꺼내 보일 수 있는 누군가에게 써 내려간 편지입니다. 나를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내가 원하는 바에 대해 가감없이 얘기하면서, '추'가 지금보다 어렸던, 얼마 전의, 그리고 현재에 어떤 욕망을 가지고 삶을 일궈왔는지 엿볼 수 있을 거예요.
여러분의 인생은 지금 몇 번째 시즌을 지나고 있나요? 한 시즌을 지날 때마다, 그 시기를 함께 회고하고 나의 속마음을 훌훌 털어낼 수 있는 그런 사람도 있으신가요? 이번 레터가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각자의 인생 곡선과 스스로의 욕망에 대해 찬찬히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
|
안녕, S. 잘 지내고 있나요? 그리고 조금은 예상하였나요? 제가 쓰는 편지의 주인공이 되리라는 사실을요. (웃음) 최근에 '나의 인생을 OTT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라고 한다면, 지금은 몇 번째 시즌이라고 생각하냐'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저는 주저 없이 '시즌 3'라고 대답했습니다. 왜냐하면 불과 몇 년 전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와 비슷한 질문이었기 때문이에요.
공교롭게도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각자가 엄청 마음을 쏟았던(전부였던) 공동체를 떠나게 되었고, 그 공동체가 와해되며 비슷하고 복잡한 감정들을 함께 느꼈었지요. 외롭고 허전하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막막하고 불안한 날들이었어요. 그래서 S, 당신과 자주 만나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며 그 시간들을 보냈었는데요. 그때 했던 이야기들이 바로 '우리는 정말 강렬하고 선명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지나가버린 그 시절에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 명쾌하고, 남들이 인정해 주는 성과가 없어도 뭐든 신나고 의미 있었는데 지금은 도대체 무엇이 주제인지도 등장인물이 누구인지도 모르겠다.'였지요. 그 말에 같이 빵 터졌었는데, 그 이후로 저는 지금이 나의 몇 번째 시즌인지에 대해 계속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학교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가 '시즌 1'이었다면, 학교를 나온 후 만난 공동체에서의 시간이 '시즌 2', 그 이후의 시간들이 '시즌 3'인 것 같은데 이번 시즌 정말 잘 모르겠네요. S, 당신은 지금 당신의 몇 번째 시즌을 지나고 있는지 새삼 궁금합니다. 생각해 보면 당신은 나의 '시즌 2'와 '시즌 3'를 함께해 주었는데요. 늘 곁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애정하고 내 편이 되어주었지요. 그래서 고마운 마음을 담아, 늘 그랬듯, 당신에게 나의 욕망을 꺼내 보이고 자 합니다.
|
|
|
'시즌 1'의 저는 ‘나’에 대한 자각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늘 누군가를 좋아했어요. 어떤 때는 고백을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혼자 끙끙 앓기만 했지요. 또 어떤 때는 친한 친구에게만 털어놓았다가 그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말하지 않을까 불안해서 일기장에만 소심하게 이니셜로 써놓기도 했었어요. (지금은 봐도 누군지 알 수 없는 이니셜...) 그 모든 애정이 쌍방이 아니거나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 시절 저는 항상 사랑을 받고 싶었어요.
그래서일까요? 어린아이였을 때 저는 만화보다 드라마를 더 좋아했답니다. 특히 로맨스를 좋아했어요. 그 시절의 드라마는 유난히 새드엔딩이 많았던 것 같은데, 돌이켜보니 저는 비련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계속해서 누군가를 좋아했던 건 아니었나 싶네요. 관계의 중심이 상대가 아닌 나에게 있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닫게 됩니다.
이런 욕망은 S를 만난 이후로도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지요. 이제는 더 이상 비련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없지만,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어떻게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지를 아는 것을 전제로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당신에게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 같습니다. |
|
|
'시즌 2'의 날들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선명하고 의미 있고 신나고 재미있는 순간들이었는데요. 이 시기의 제 욕망은 '성장하는 것'이었어요. 생각지도 못한 애정을 담뿍 받기도 했고, 그 애정에 보답하기 위해 일도 관계도 최선의 노력을 다했었죠. 노력한 만큼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온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도파민에 중독된 것처럼 늘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그 성장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멈추게 됩니다. 한동안 그 시절을 외면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부정하고 싶지 않아요. 그 시간들은 성장하고 싶다는 저의 욕망을 매해 깨우쳐 주었고,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람들 속에서 제가 반짝이게 해 주었으니까요. 또 나를 이루는 가치관, 일하는 방식, 태도, 관계 맺는 법 등 저를 이루는 많은 요소를 그곳에서 배웠으니 괜찮아요.
그 후 맞이한 '시즌 3', 지금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답니다. 초반에는 '시즌 2'의 방식을 고수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러다 보니 새로운 곳에서 나를 증명하는 일이 버거워지기 시작하더군요. 제 안에 이전만큼의 애정과 에너지가 있을 수 없고, 조직 자체 또한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아니야, 다른 길이 있을 거야'라며 몇 번의 이직을 반복했지만 결국 세상 모든 일에 심드렁해지는 순간이 오고야 맙니다.
올 초 쉬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정말 쉼 없이 살아왔더라고요. 저는 항상 잠깐의 쉼에도 무언가를 하지 못해 안달이 나 있곤 했는데, 제 인생에 이렇게나 심드렁한 순간이 또 있었나 할 정도로 모든 것들에 무뎌진 시간이었어요. 이전의 나는 유명해지고 싶고, 동료를 만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평범하고 싶고, 적당히 하고 싶고, 멋지고 싶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싶었죠. 예전만큼 하고 싶거나 배우고 싶은 것도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어요. |
|
|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었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S, 당신도 잘 알겠지만 제가 어디 가겠어요?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아요. (웃음) 그저 예전의 저에 비해 심드렁해졌다는 것이죠. 심드렁한 채로 사람들을 만나고, 여행을 가고, 일상을 보냈어요. 아마도 불안함이 엄습해오지 않도록 관성처럼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상태였던 것 같아요.
그러던 와중 함께 일을 그만둔 동료 몇 명과 양배추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는데요. 왜 이들과 함께하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니 우리는 모두 일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좌절당했고, 혼자 일하기보다 함께 일하는 것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믿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어요. 덕분에 조금씩 불안함이 사라져갔고 정말 운명처럼 새로운 일을 제안받으며, 비로소 3개월간 내가 심드렁했다는 것을 깨우치고 왜 심드렁했는지도 알게 됐어요.
저는 학교 밖으로 나온 후, 지금껏 제가 하고자 했던 일을 시작하고 끝내는 것에 대해 스스로 결정해왔는데요. 외부적인 이유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이를 극복할 만한 일이 정말 존재하기나 할지 두려웠고, 있다고 해도 그게 어떤 것인지 몰랐기에 별로 하고 싶은 일이 없다고 되뇌며 내내 심드렁했던 것이죠. 그 이후로는 또 주저 없이 나의 심드렁한 상태를 알아차리게 해 준, 제안받는 순간 심장이 뛰었던 그 일을 하러 6개월간의 서울 생활을 하러 와 있네요. |
|
|
벌써 서울에 온 지 3개월이 지났어요. 약속된 6개월의 반이 흘렀지요. 낯선 서울말과 서울 지리, 서울 지하철도 이제 조금은 익숙해졌고요. 매일매일 정말 많은 경험을 하고 있고, 많은 배움과 많은 깨달음을 얻는 나날들이에요. 하지만 이는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 다시 이야기하면 좋겠어요.
다만 지금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건, 이곳에서도 저는 나의 욕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나의 마음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끊임없이 탐구하고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더 잘 알아차리기 위해 서울의 동료와 친구들은 물론, 나 자신과도 이야기 나누고 있어요. 어쩌면 '나'라는 사람은 끊임없이 바뀌는 저의 욕망에 의해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제 욕망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드라마 '또 오해영'의 주인공 오해영처럼, 저는 여전히 제가 애틋하고 잘 되길 바라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시즌 3'의 제 욕망은 제가 더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일 수 있겠어요.
그리고 S, 저는 당신 또한 더 더 잘 되길 바랍니다. 저에게는 지금 있는 그대로도 소중한 S이지만, S도 조금 더 S의 욕망에 귀 기울이고 집중해 보기를 바라요. 제 모든 마음을 받아주는 당신에게 나의 욕망을 꺼내 보일 수 있음에 감사하며, 긴 편지를 마칠게요. |
|
|
추는 올해 초 사람들에게 '유명해지고 싶다'라고 본인 소개하면서 '심드렁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었어요. 이 2개의 단어가 품은 간극에 대해 추의 생각이 궁금했는데 오늘의 레터로 많이 해소된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 추는 매사 심드렁하기보다는 많은 것들에 애정을 가지고 보살피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추가 걷고 있는 길이 추의 의지로 잘 완결되길, 추의 앞날에 건강한 자양분이 되길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또 그런 추를 옆에서 계속 지켜봐 주던, 누군지 모를 S 행복 또한 빌게 되네요. 역시 우리의 삶에는 동료나 친구 등 함께 하는 사람이 중요하구나 깨닫는 편지였습니다. 저도 시즌 3 잘 해볼라요! 🙌 - 양 - |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나'를 중심에 놓고, 끊임없이 듣고 말하고 표현하는 추가 저는 정말 대단하고 멋지다 느껴져요. 제가 잘 못하는 것을 잘 하는, 혹은 잘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요? '사람은 스스로에 대해 타인에게 이야기할 때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라는 맥락의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요. 본인의 욕망을 S에게 꺼내 보이며 추도 자신을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그런 사람이 곁에 존재한다는 것이 참 부럽기도 하고요! 내가 지나온 길을 나의 욕망과 욕구에 초점을 맞춰 되돌아볼 기회는 한 번도 없었는데, 추 덕분에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 - 배 - |
|
|
요리 : 현실에서의 도망이자 현실로 귀환시키는 촉매제 |
|
|
먹고 먹고 또 먹고
요즘 저의 최애 레시피를 소개 드립니다. 다 먹고살고자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무언가 먹고 싶다는 욕구는 원초적인 욕망이지만 또 일상에서 아주 쉽게 해소할 수 있는 욕망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 가끔 시간적인 여유가 될 때면, 준비-식사-마무리하는 행위까지 이 감각에만 완전히 집중해 몰입하는 시간을 가져요. |
|
|
자고 자고 또 자고
매일을 주말처럼 알람을 맞추지 않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밤잠을 잘 설치는 저에게는 매우 소중한 아침잠이지만,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빠르게 포기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나른한 몸을 힘차게 일으키기 위해, 종종 눈 뜨자마자 듣는 파이팅 넘치는 노래를 공유해요. |
|
|
서울 2024 홈리스월드컵 : 요즘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는 일 |
|
|
하고 하고 또 하고
제가 서울에 오게 된 이유이자,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개최되는 <홈리스월드컵>의 사무국에서 팀코리아 운영·관리를 맡아 고군분투하고 있어요. 이는 발송일 기준 18일을 앞두고 있는 사회혁신·다양성 스포츠 문화축제로, 비건페스티벌/싸커마켓/컨퍼런스 등의 부대 행사도 함께 진행되니 많은 관심 가져 주세요! |
|
|
✨ 매월 3일, 양배추 레터를 만나보세요! ✨ |
💌 피드백, 질문, 하고 싶은 말 모두 좋아요! 💌 |
|
|
🥬 양배추 시스터즈 🥬🐕 미래 @rice_come • ⚔️ 은혜 @o_vvozll_ • 👀 가영 @orothy_ycabbagesisters0331@gmail.com | 수신거부 | Unsubscribe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