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비만 내리다 여름이 끝나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끝내기 무섭게 거짓말처럼 햇볕이 내리쬐는 변덕스러운 요즘입니다. 다들 건강관리 잘 하시며 여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양배추의 두 번째 편지는 '현재의 배'가 '미래의 배'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우리네 여정. 누구나 특정한 시기에 맞닥뜨리게 되는 분기점에 대한 이야기이지요. 여러분도 한 번쯤 그런 경험이 있으시지 않은가요? ‘내가 한 선택이 옳은 것일까?’, ‘나는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등 확신보다 조급함이 앞서 나를 괴롭혔던 때가요. 하지만 그조차도 소중한 경험임을, 지나고 나서야 나의 불안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안아줄 수 있는 그런 때가 언젠가 오는 것 같습니다.
편지를 받으신 독자분들이 '나도 그런 때가 있었지'라는 회상에 젖으실지, '나도 지금 그런데..'라는 공감을 하실지 궁금해집니다. 열심히 균형을 잡고자 하는 배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오늘 하루 나에게, 동료에게, 우리에게, 다정히 건네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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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G. 당신은 잘 지내고 있나요?
저는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의 개인적인 삶과 일, 인간관계 같은 것들 중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인생 최대의 우울감에 깊이 침잠해 있었답니다. '모든 게 최악이야'라는 문장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고, 길을 걷다 갑자기 눈물이 나는 일도 있었어요. 인생이라는 게 조금이라도 제 생각과 같이 풀리면 좋을 텐데 참 그렇지 않더라고요. 당신이 보기에는 제가 하는 이런 말이 우스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한 마음에 답장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편지를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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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던 시기를 지나, 요즘은 여러 도움을 받아 대체로 괜찮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가끔 오락가락하기도 하지만요. 이 과정을 통해 저라는 사람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는데요. 그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저는 '불안감'이 다른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높은 사람이더군요. 얼마 전 개봉했던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의 불안이를 보면서는 심히 불안정할 때의 저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아지기도 했어요.
이러한 저의 성향은 '일'을 대할 때에도 똑같이 발현되는 듯합니다. 계속해서 무언가 아등바등하고는 있는데 스스로가 느끼기에 엄청난 성장을 했거나 만족할 만한 성과가 보이지 않으니 계속해서 불안한 거죠. '나 잘 하고 있는 것 맞나?', '과연 내 선택이 옳은 걸까?', '다른 사람은 더 잘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따위의 무수한 걱정이 제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만 발목을 잡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누구도 알려줄 수 없는 일인데, 그 해답에 근접하고 싶어 타로나 사주를 보기도 하고요. 끊임없이 불안한 저 자신이 나약하게 느껴져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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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저는 어렸을 적부터 잡다한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하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아 장래희망이 자주 바뀌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사실 본업을 갖고 있으면서도 늘 새롭게 시도해 볼 것은 없는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성향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기웃거리다 보면 꼭 어떤 일을 찾아 벌리게 되고, 어느새 밤낮없이 일이든 공부든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어요.
지금까지의 제 경험 상 낮에도 일하고 밤에도 일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부분을 습득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거예요. 하지만 이 루틴이 좋지 않다는 것을 당신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여기도 일, 저기도 일. 잠깐이라도 쉬고 싶은데 더 이상 마음대로 멈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죠. 저녁이 되어 밖은 이미 깜깜한데 아직도 할 일이 태산인 날에는 가슴에 연기가 낀 듯 답답해지기도 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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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많이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새로운 일을 찾는 습관은 아마도 제가 가진 불안감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지 싶어요. 지금보다 더 잘 해내고 싶고,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고, 이전보다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기대하기에 말이지요. 그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과해진다면 확실히 자기 돌봄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우연히 '우울한 사람은 과거를 살고, 불안한 사람은 미래에 살고, 행복한 사람은 현재에 산다'라는 문장을 보았는데요. 한창 저의 불안감에 대해 알아차리고 있던 때라, 이 말에 매우 공감되는 동시에 큰 깨우침으로도 다가오더라고요. 제가 자꾸 불안한 건 제가 지금 현재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더 정확히 인식하게 되었달까요? 먼 미래를 그리며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 순간과 시기를 오롯이 즐기는 것이 지금의 저에게 더 필요하다는 사실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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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살고 있음에도 저만 계속 제자리걸음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밀려오는 좌절감에 쓰러지지 않고 훌훌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는 방법을 이제는 조금씩 배워가고 있어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좋은 일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도요. 안부를 물어오는 친구들이라든지, 제 이야기에 공감하며 손을 잡아주는 동료라든지, 이따금 찾아오는 작고 소중한 성취감 같은 것들 말이에요. 너무 많이 고민하기보다는 취미 생활을 하며 주위를 환기를 시키는 것도 방법인 듯하고요.
아시겠지만 저 같은 경우 얼마 전부터 한 달에 한 번 기타 레슨을 받고 있는데요. 매일매일 연습하지 못해 수업 때마다 선생님의 얼굴이 굳어가는 모습을 흘깃흘깃 곁눈질하며 눈치를 보고 있기도 하답니다. 당신은 아마도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마구 움직일 수 있겠지요..?!
그럼 쉽지 않은 삶의 여정 속에서도 마음만은 항상 평화롭기를, 애쓰는 자신에게 잘 하고 있다는 말 한마디 건네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총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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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배'는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해내고 성과도 좋은, 다방면의 장점을 가진 사람입니다. 한편으로는 속내를 잘 비치지 않아서 밖에서 보기에는 굉장히 잔잔한 호수 같지요. 하지만 속으로는 고민도 많고 불안해한다는 걸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부유하는'이라는 표현이 '배'와 정말 찰떡인 것 같네요. 사람들이 보기에는 유유자적 부유를 즐기는 것 같지만 또 그 부유에는 '배'만의 깊은 고민과 잘 해내고 싶은 의지, 욕구 같은 것들이 섞여 부유마저 최선을 다하고 있을지도요! 그런 자신을 좀 더 믿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토닥토닥🙌 -추- |
왜 '배' 본인을 G라고 명명했을까. 도입부에 질문이 생겼어요. 제가 아는 "배 = 멈추지 않는다"라는 공식이 있을 정도로 항상 무언가를 바삐 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의 상황에서 약간의 주저함에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아 보였어요. 하지만 배를 잘 알기에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너무 본인을 괴롭히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었네요.😉 현재 저도 다를 바 없는 상태라고는 생각하지만 보이지 않는 러닝메이트가 서로 되어주어요. 이 시기를 잘 통과하여 Go, Get, Great의 G가 되리란 걸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당🤜 빠샤 -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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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망 중 - 진은영
나는 따스한 손바닥으로
펜을 쥐었어, 부화시키려고
그가 살아야 할 이유의 일들을
그거 알아? 슬픔이 하느님보다 힘세다는 거
그거 알아?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매일이 찾아왔어
그거 알아? 노른자가 깨졌다 식탁 위에서
나는 단단하게 살아있다! 잘 익은 간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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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편지 - 윤도경(2019)
엉엉 울어봐도 돌아오지 않는 건
땅을 쳐봐도 바뀌지 않는 건
낙타처럼 떠난 님의 마음
해외 토픽감으로 마시던 술도
무작정 떠나보았던 기차여행도
열쇠 없는 마음 자물쇠만 녹슬어가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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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의 위로가 아닌 나 자신의 다독임이 필요할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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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 9 - 이소라(2008)
나는 알지도 못한 채 이렇게 태어났고
태어난지도 모르게 그렇게 잊혀지겠지
존재하는 게 허무해 울어도 지나면 그 뿐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강하게 하고
평범한 불행 속에 살게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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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D
안녕 양!
중요한 회의를 앞두고 있어서 평소보다 조금 더 바쁜 아침이었어요. 여느 아침처럼 메일함을 확인하는데 양배추레터의 첫 편지 소식을 보고는 잠깐 읽어보아야겠다 했었죠. 그런데…
이런 반가운 선물을 주시다니요. 놀랍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편지를 받아본 날의 하루는 바쁜 와중에도 문득문득 ‘처음’을 생각하게 되는 하루였네요. 이런 도파민 선물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고마워요.
모처럼 휴가를 떠나는 기차 안에서 답장을 작성합니다. 이번 휴가는 그간의 서울 생활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해나가야 할지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 해요. 벌써 이 생활도 3년을 꼬박 채웠지 뭐예요? 돌이켜보면 저로서는 양과 함께 일을 시작했던 2015~2016년도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터닝포인트였는데, 그런 비슷한 시간이 다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 고민의 시작점에서 양의 편지에 대한 답장은 꽤나 괜찮은 휴가의 시작인 것 같아요.
사실 ‘처음’을 다시 들추어본다는 건 저한테는 매우 어려운 일이기도 해요. 양과 함께했던 그 시작의 순간이 충분히 찬란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서툴렀던 제 모습을 오롯이 받아들이기가 한동안 힘들었어요. 누구나 처음은 서투르고, 부끄러움투성이인데 말이죠. 그 시간 덕분에 여전히 부단히 노력하고 있고, 무언가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러나저러나 서로의 인생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했네요 우리는.
제 기억 속 양의 첫 모습은 사실 지금이랑 크게 다르지 않아요.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지 않았고, 아는 것을 더 잘 알기 위해 노력했고,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하지 않았으나 해보기 위해 언제나 앞장섰어요. 지금의 양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당연해요. 언젠가는 이런 선택을 할 것이라는 걸 저는 예상을 했었어요. 그런 모습을 한편으로는 많이 부러워도 했답니다. 양을 따르는 사람이 많은 이유겠지요.
‘돌파구가 없다’ 3년 전 제가 서울로 떠나며 했던 말이지요. 그럼 서울에서는 돌파구가 있었을까요? 딱히 그렇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결국 스스로 만들어내야 할 돌파구를 누군가 만들어주기를 바라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어요. 무거운 책임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고, 나를 구원해 줄 누군가를 기다렸던 것도 같은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답니다. 어쩌면 지난 시간들은 모두 스스로 일어나기 위해 기지개를 켜 온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휘청이기보다는 단단하게 중심을 움켜쥐고 싶습니다. 그 과정에 양도 있다고 생각해요. 언제나 응원하고 있어요.
양의 고민을 제가 많이 들어주었다고 말했는데 사실 서로 나누었다고 생각해요. 저도 못지않게 말 많이 했었는데 제가 양의 고민을 받아주었다기보다는 그간 서로 기대어있었다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아마도 앞으로도 지금과 동일하게 흐를 것 같은데 지금보다 조금 더 다정해지려 하니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말을 줄이고, 지갑을 열겠습니다.)
목포로 향하는 기찻길은 비가 많이 내려요. 예전에는 휴가에 날씨가 흐리면 기분이 참 안 좋았는데, 지금은 흐리면 흐린 대로 그만의 매력이 또 있어서 그러려니 합니다. 이것이 삶의 여유인가요. 잘 채우고 돌아와서 또 주어진 과제를 열심히 헤쳐나갈 텐데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다가 또 마주쳐 봅시다. 언젠가는 우리에게 쌓인 기억이 추억으로 남아 소주 한잔 앞에 두고 깔깔거릴 날이 있을 거예요.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날까지 건강하셔요. 조만간 뵈어요.
P.S. 게임을 좋아하고, 게임을 같이 하는 친구도 좋아하는 양은 언젠가 작은 게임 가게(?)를 열고 싶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 작은 꿈도 꼭 이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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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또 다른 양배추
- 이끼 : 내심 안 그런 척,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던 양배추 레터의 첫 번째 편지 잘 받아보았습니다. 저의 답장이 거름이 되어줄 수만 있다면 기꺼이 몇 자 소감을 적어보고 싶어 이렇게 답장을 보내요. 문화기획이라는 망망대해에 발을 담궈본 사람으로서, 덕분에 참 많은 성장과 좋은 사람과의 연결을 경험했었다 싶네요. 나를 향해 깊이 침잠해 보기도 하고, 현재 살고 있는 도시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기 위해 몰입하기도, 나의 기획에 참여하게 될 사람들에 대해 상상해 보기도 하면서요. 하지만 늘 한편에 서 있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했고, 문화기획이 제 삶에서 취미 혹은 사이드잡 정도로 여겨지는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이번 레터를 읽으면서 좋은 동료들과 꾸준히 기획에 대한 잔상들을 쌓아오신 것이 멋있고 부러웠어요! 물론 제게도 든든한 동료들이 있지만서도 말입니다.💚 일상에서 문화가 주는 가치를 경험했기에 앞으로의 진로가 어떻게 흘러가든 돌고 돌아 문화를 좇게 되리라는 느낌을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양.배.추 분들과도 느슨하면서도 꾸준한 인연을 맺고 싶네요! 앞으로의 행보도 안 그런 척- 호시탐탐 응원하며 기다리고 있을게요. 치얼스~
- J : 양, 당신에게 언제나 행운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 자망 : 첫 동료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글이라 아주 흐뭇하게 읽었습니다. 제게도 첫 직장, 첫 동료의 기억이 있습니다만 꼭 처음이 의미 있진 않더라고요. 하하^^ 현재 저도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서울 생활은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데요… ”난 진짜 여기에서 못 살겠다. 사람이 너무 많잖아! “ 투덜거리며 한강에서 낭만을 즐기는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서울은 그런 매력이 있는 도시 같습니다. 첫 레터를 받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기대됩니다! 양배추 응원합니다 keep g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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