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눈 깜빡할 새 흘러 어느덧 상반기를 마무리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다가도, 문득 내게로 찾아오는 행복하고 재미진 순간들을 담뿍 느끼시길 바라요.
이동진 평론가의 「밤은 책이다」에는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삶이란 지극히 길고 험난한데다,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매일같이 벌어지는 것이기에 이러한 문장이 많은 공감을 받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만큼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한 뼘씩 품고 살아간다는 반증이기도 하겠고요.
매일을 먼 미래와 목표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확실한 방향이 있다면 또 모를까,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의 중간 과정과 끝이 흐릿하게만 보이는 상황이라면 더욱 아득하게 느껴지겠지요. 그래서 저희는 오늘, 우리의 '오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같은 오늘이지만 다른 시간을 보낸 날, 다른 오늘이지만 각자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은 같은 날. 이런 양배추의 오늘을 상상하며 읽는다면 이번 편지가 더욱 흥미로울 거예요.
별것 없는 듯 보이지만 충분히 의미 있고 특별한 우리네 오늘. 여러분의 오늘은 어떠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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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새해를 앞둔 지난해 연말, 우연히 나태주 시인의 짧은 글을 보았다. 「12월 31일. 이제, 또다시 삼백예순다섯 개의 새로운 해님과 달님을 공짜로 받을 차례입니다. 그 위에 얼마나 더 많은 좋은 것들을 덤으로 받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삼백예순다섯 개의 해님과 달님과 함께 찾아오는 ‘오늘’이 쌓여 1년이 흐르겠구나- 싶었는데, 벌써 1년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특별할 것 없지만 소중하지 않을 수 없는 아주 보통의 하루들을 기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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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일
이틀 전 이사를 겨우 마치고 주어진 휴일. 노동절 집회를 갔던 해도 있지만 올해는 어지러운 집부터 정리를 해본다. 마침 알림이 떠 마을버스 타고 당근도 해왔다. 이사 날에 맞춰 산 침대 말고는 식기류도 이불도 없어 연휴에 대구에서 짐을 마저 가져와야 할 것 같다. 너무 바라던 일이 이루어져서 그런가, 새 집에서 지내게 된 것에 생각만큼의 감흥은 없지만 몸은 정직하다고 했던가. 새 침대에 누우니 천국이 따로 없다. 홈리스(Homelessness)가 삶에 미치는 영향을 몸소 경험한 1년이 지났다.(negative) 드디어 마포구 주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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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3일
반딧불이의 마지막 즘 같이 활동하던 후배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정말 오랜만에 수성못으로 향했다. 오전에는 계속 비가 왔는데 다행히 결혼식 시작하기 전 비가 그쳐서 맑은 햇살이 내리쬐는 수성못을 감상하며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후배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의 모습은 낯설었지만 결혼식 내용은 참으로 그 후배 다웠다. 축가 대신 신랑, 신부의 편지 읽는 시간을 오래 할애했는데 특히 신랑의 원맨쇼가 주를 이루었다. 그런 그의 결혼식을 보며 함께 간 선배 언니와 이야기했다. “사람은 참 안 바뀐다.(posi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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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8일
올해 맡고 있는 사업의 OT가 있는 날이었다. 그냥 짧은 행사일 수도 있지만 각자 시간을 내어 오는 걸음걸음이 소중하고, 첫 만남/첫인상은 중요하니까 행사가 무사히 진행되기를 바랐다. 다행히 날씨도 좋았고, (처음 가 본) 진행 공간도 좋았고, 건물 경비 아저씨도 친절하셔서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워밍업으로 진행한 조별 프로그램이 생각보다 잘 되어, 분위기를 푸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 프로그램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의견을 증명하게 되어 내심 기뻤다. 나는 내가, 동료는 동료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역할을 해내었고 OT를 잘 마쳤다. 역시 행사를 같이 하고 나면, 서로를 더 잘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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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영 어쩌다 마포구에 정착하게 된 기획자. 주4일은 일상예술창작센터에서 일하고, 주3일은 '진짜' 내 일과 나를 찾기 위한 작은 시도와 성취를 반복하고 있다. @orothy_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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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은 근로자의 날이다. 과거에는 이런 날이 있는지조차 몰랐는데 약 10년 전 그 중요성을 깨달았다. 당시 영화관 영사실에서 알바를 하던 나는 부모님들과 손을 잡고 오는 어린이들이 그렇게 많은 걸 처음 봤다. 영사기 옆 아주 자그마한 창문에서 느낀 그 변화는 매년 5월 1일 나를 다시 그 영사실로 소환시킨다. 이렇게 소중한 하루, 나는 어떻게 보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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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10시
원래 평균 기상시간은 오전 7시이지만 함께 사는 출근자가 출근을 하지 않는다니- 바로 늦잠을 잤다. 물론 전날 밤 평일 휴일을 축하하며 함께 늦게까지 ott를 시청한 게 크게 작용했다. 둘의 공통적인 취미는 함께 예능 보기라 할 수 있겠다. 느지막이 일어난 우리는 대충 아침을 먹고 거실, 각자의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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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10시~11시 30분
다음으로 우리가 한 일은 4월 내내 방영된 '나는 솔로'의 마지막 회차를 보는 것이었다. 매번 짝지와 “이번 기수만 보고 안 본다.”라는 대화를 나누지만 정신 차려보면 다음 기수를 또 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특이한 점은 1회를 보면 다음 회차를 안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뭐랄까,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여러 인간 군상을 보는 기분이랄까- mbti 유형 중 극 N인 나는 내가 저 상황 속에 있다면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해 종알거리며 보곤 하는데, 옆에서 나의 말을 듣고 있는 극 S인 짝지는 대체 그런 상상을 왜 하냐고 타이른다. 매회 우리는 이렇게 시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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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11시 30분~12시 30분
사실 전날부터 우리는 고조되어 있었다. 바로 맥도날드 신상이 나왔기 때문이다. 집 앞 근처에 맥도날드가 있어 신상이 나오면 바로 맛보는 게 또 다른 우리의 취미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적다 보니 정말 세속적이기 그지없는 하루긴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전에 나온 스리라차마요 버거가 더 맛있었는데 아쉽당'이라는 평을 내렸지만 이후에 또 사 먹었다. 원래 햄버거를 이렇게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 집으로 이사 오고 바뀐 나의 입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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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4시~오후 5시
나도 짝지도 그 통신사를 쓰고 있다. 나는 홈페이지로 예약 신청을, 짝지는 사건이 터지고 동네에 있는 대리점에 바로 예약을 걸어뒀는데 나는 깜깜무소식, 짝지는 일주일 후 바로 대리점에 수령하라고 연락이 왔다. 이날 모처럼 비가 아주 많이 내리는 날이었는데 왜 나 일할 때 혼자 다녀오지 않았냐는 타박과 함께 같이 출발했다. 이 레터를 쓰는 지금 5월 중순 나는 아직도 연락을 받지 못했다. 무슨 일 생기진 않겠지? 털릴 것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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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 부산 원툴 기획자. 연구자 기질을 가진 기획자가 모토로, 현재 그 기질을 열심히 쌓는 과정에 있다. 부산에서 이것저것 기웃기웃하고 있다. @rice_co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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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먼 곳만 바라보는 습관이 있었다. 손 닿지 않는 목표에만 몰두하다 내게 찾아온 아름다운 순간들을 많이 놓치곤 했다. 사람은 변하기 쉽지 않다고, 여전히 아득한 곳을 바라보기 십상이지만 그럴 때마다 ‘지금, 바로, 여기’를 되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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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9일
생태, 대안적인 삶의 방식에 관심이 많은 나. 지금의 상황에서 내가 더 힘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하다, 요즘은 지역의 한 공동체에서 운영하고 있는 활동가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비우면서 더 풍족해지는 삶, 서로를 있는 그대로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삶을 실천하는 이들과 벗이 되는 과정에 함께할 수 있어 매주 화요일 저녁이 참으로 소중하게 다가온다. 오늘은 봄눈별 님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고요히 생각할 시간을 내면 낼수록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확실해질 것이라는 그의 말대로, 내 일상도 조금씩 전환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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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일
노동절 출근과 아침부터 걸려오는 전화. 마냥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과 지하철에서 만난 푸른 풍경을 위안 삼아 긍정 회로를 돌려본다. 갑작스레 내리는 장대비와 번개 침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 출석률이 좋은 것 또한 참 다행인 일이 아닌가. 짧은 사업 기간 동안 매일같이 만나며 반갑게 인사해 주셨던 참여자분들, 예상치 못한 변수에도 괜찮다고 웃으며 말해주었던 파트너 선생님들, 미처 우산을 챙기지 못한 날 위해 집까지 바래다준 직장 동료까지.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감사할 일은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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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1일
오늘은 동료와 함께 운영하기 시작한 비건 운동 커뮤니티에서 등산을 가는 날이었다. 다음 주에는 집에서 혼자 축 늘어져 있는 하루를 무조건 확보하리라 다짐하며 일요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지친 심신이 무색하게 상황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마음은 자꾸 조급해졌다. 혹여나 나의 바쁜 마음이 함께한 분들에게도 전해지지는 않았을까, 모임이 끝난 지금도 여전히 걱정된다. 하지만!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는 걸 꼭 기억하자고, 자꾸만 초라해지려는 자아를 붙들고 '넌 잘 하고 있어!'라고 계속해서 얘기해 주자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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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 직장인 겸 독립기획자. 문화예술, 도시재생을 전공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부산에서 꾸려갈 만한 일은 무얼까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o_vvoz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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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서섹스대학에서는 2011년부터 매년 5월 12일이 되면 전 세계의 시민들에게 하루 동안의 일상을 기록해달라고 한 뒤, 이를 아카이브로 축적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개인의 하루가 함께 쌓인다면 단순 나만의 일기가 아닌 우리의 기록이 될 수 있다고 하네요.
양배추의 일상을 만나보신 여러분은 어떤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계신가요? 그냥 스쳐간 하루인 것 같지만 곰곰이 되새김질해 보면 무의미한 하루는 없다는 기분도 듭니다. 여러분도 1년 중 오늘 하루를 기록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분명 평범한 나날이겠지만, 글로 마주하는 순간 특별한 날로 재탄생할 수도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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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또 다른 양배추
- 룡룡 : 웰컴백 양배추! 따뜻한 봄과 함께 돌아온 것을 환영합니다. 양배추 레터가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답신을 날려봅니다. 요즘 경제가 어려워지고 한국 사회에 어두운 전망이 자리하면서, YOLO, 워라밸 등을 외치던 분위기가 완전히 꺾여버렸죠. 때론 자조적이거나 포기하거나 반동으로 이를 부정하는 모습들을 주변, 전 동료들에게서 보게 됩니다. 한편으로 이런 상황이 야속하면서도.. 원래 나를 찾고 자존하고 일로 정체성을 구현하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었단 생각이 들어요. 저는 행복은 상수가 아니고 당연히 주어져야 할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상황이 좋을 때 답을 찾았으면 좋았을 텐데 저도 아직 그러지 못했네요. 그러나 기세를 다시 올려보며 다시 자존을 꿈꿔봅니다. 변화, 우회, 보류. 3인 3색의 선택을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양배추도 기세를 올려 파이팅 하시길 바라요. → (🥬) 매번 보내주는 답장에 진심으로 고마와요. 답장이 없어도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되겠지만, 그래도 구체적 피드백이 있으니 훨씬 기쁘네요. 무엇보다 양배추의 선택을 <변화>, <우회>, <보류>라는 단어로 명료하게 설명해 준 것이 인상 깊었어요. 우리는 사회적인 존재지만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아가려는 태도와 의지가 더 중요하겠지요. 룡룡님 덕분에 기세를 한껏 올려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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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똑똑- 양배추가 준비하고 있는 또 다른 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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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루트로 문화예술 생태계에 진입, 현재까지 이 영역에서 버텨내고 있는 양배추. 문화기획 혹한기(?)인 지금, '나만 힘든가?', '다른 사람들은 이 시기를 어떻게 버텨내고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교류의 장은 왜 없을까?'란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해 "2025 오늘의 기획자 캠프"를 개최합니다. (🔗키메시지 보러가기)
또래 동료 기획자들을 발견하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시간. 그리고 더 나은 오늘을 만들기 위한 시간! 저희만의 방식으로 즐겁게 기획하기 위한 후원(🔗결과 보러가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5월 25일까지 참여자 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전국의 前/現 문화도시 노동자, 재단 담당자,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 내가 기획자인지 아닌지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누구나 환영하오니 많은 관심과 신청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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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여서 오캠!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링크 내 문의처를 참고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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